드디어 베트남에 도착한 늑돌이와 쑤기. 그러나 비행기 편이 늦어서 시간은 이미 밤 아홉시반.
생전 처음 도착한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말과 글.
그리고 시간은 한밤중.
거기다가 이때 찍은 사진은 다 날아가서 보여줄 수도 없고... 어, 이건 상관없나?
늑돌이와 쑤기의 고난에 찬 베트남 표류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에겐 이번이 사실상 처음의 자유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아무 생각이 없어서여행 오기 전 나름대로 인터넷에서 다른 분들의 여행기를 찾아 보고 지식을 쌓아놨기(또는 쌓아놨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늑돌이의 계획에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대략의 숙소 후보지도 잡아놓았고, 이동수단도 대강은 다 알아놓은 상태였다. 심지어 늑돌이 해외여행 최초로 가이드북도 샀다. 그러나 모든 탁상계획이 그렇듯이, 현실은 틀린 법이다.
이 여행기는 그러한 악전고투의 기록이라고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란 말이냐. 자유여행도 처음이고 베트남도 처음인 걸.
아무튼 여행기로 돌아와서, 늑돌이는 공항에서 나오면서 공항 바로 앞에서 호객행위 하는 택시보다는 옆쪽으로 나가 주차장 쪽에서 대기하는 택시 기사를 잡아서 흥정한 다음 타고 가는게 좋다는 말을 기억해 냈다.
베트남에는 미터로 가는 미터 택시도 있었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금액을 미리 협상하여 정하고 가는 택시도 많다고 했다.
그래도 대략 5만동 정도면 충분히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여행자의 메카, 데땀 거리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5만동 짜리 지폐를 꺼내들고 데땀을 외치며 흥정할 준비를 하고 나름대로 순진해 보이는 한 젊은 택시기사를 찍고 접근하여 말을 걸었다.
그런데 여기서 신경써야할 부분 한가지가 있다. 베트남 말에는 중국말처럼 성조가 있다. 그것도 6개씩이나.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이 그냥 이야기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도 어떡하랴. 일단 외쳐보았다.
늑돌이 최초의 베트남 사람과의 회화였다(환전할 때는 쑤기양이 대화했지만 별로 말은 필요없었다고 한다. ^^;;).
“데땀, 데땀.”
“오케이.”
그러면서 그는 바로 자길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어,
어,
너무 쉽잖아.
왠지 허전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를 따라갔다. 그의 택시는 비교적 새것인 일제차종이었다. 참고로 베트남의 택시는 낡은 차종도 많고, 이들은 당연히 승차감도 별로 안 좋다.
< 베트남 택시. 어디서 본 적 없냐고? 당연하다.
이건 베트남에 수출된 국산 차걸랑. >
우리는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의 위치를 가리키며 “데땀, 데땀.”이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는 지도를 조금 보더니 다시,
“오케이.”
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앗, 요금 이야기를 아직 안 했다. 난 5만동 짜릴 보이며
“오케이?”
“노노, 메타.”
오옷... 베트남에서 처음 만난 이 아저씨, 베트남에 대해 들은 여러 가지 소문과는 달리 페어플레이다. 우리는 물론 동의하고 돈을 다시 지갑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우리의 택시는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베트남에서의 회화는 90% 이상 이 정도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영어 잘 못해도 걱정마시라는 뜻에서 주절주절 적어보았다. 어떤가, 쉽지 않은가?)
그리고 약 40분 정도 우리는 불안에 떨었다.
이 어두운 곳(공항 주변은 온통 어둡다...)에서 혹시 우리는 어딘가로 잘못 가는 게 아닌지, 미터로 가기 때문에 빙빙 도는 건 아닌지, 아니면 잘 생기고 이쁜 죄로 늑돌이와 쑤기를 어디다 팔아먹는 건 아닌지 등 여러 가지 영화 일곱편 정도의 비극/재난영화 줄거리를 쓰고 있는 동안, 데땀에 도착했다.
택시비는 4만몇천동이 나왔지만, 5만동을 줬더니 거스름돈이 안 돌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비극/재난 영화 일곱편에서 탈출한 기쁨에 별 불만없이 땡큐라고 말하며 내렸다.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 그렇다, 롯데리아다. 처음 봤을 때의 사진이 없어 밝을 때 찍은 걸로 대체. >
오오... 롯데리아인가. 그러고보니 자동차들도 한국산이 많고... 울나라 잘 나가는 나라였나 보다.
하지만 한국사람은 안 보인다. 보인다면 길잃은 우리에겐 정말 구세주였을텐데.
아무튼, 데땀 거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0시 10분 정도.
늑돌이는 미리 조사해둔 괜찮은 호텔 리스트를 찝으면서 방을 잡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어느 정도 예상된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대부분의 호텔에 방이 꽉 찬 것이다. 늦은 데다가 토요일이라는 점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자, 문제가 심각해졌다.
“Do you have room?”
“Sorry, We are full.”
대략 열 번 정도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을 때, 다른 호텔의 약도를 가르쳐주며 가보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방이 가득 차 있었고 문 닫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계속 헤메며 이거 첫날부터 노숙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짐들고 돌아다닌지 두시간 정도 지나면 그렇게 된다), 결국 방을 잡을 수 있었다.
10달러, 샤워, 에어컨, TV, 더블 베드.
방 사진은 못 보여드리지만, 좀 희안한 구조였다. 화장실이 위로 뚫려 있었다. 냄새가 나지나 않을까 잠시 고민.
그리고 도마뱀이라도 보일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TV는 삼성 볼록 브라운관. 게임도 된다.
틀어보니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 말. 하지만 재미있는 건 자막보다는 더빙이라는 것. 그리고 더 무서운 일은 수많은 사람의 역할을 한 사람이 더빙했다는 거다. 마치 우리나라 변사처럼. 여성이 하는 것 같다.
아무튼 대충 씻고 정리하고 난 다음, 베트남에서의 첫날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타이거 캔맥주 하나를 사와서 마시고 잠이 들땐 벌써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각.
이제 내일을 위해 자자.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버티고 잠자지 않은 쑤기양에게 감사.
그렇게 베트남에서의 첫날밤은 끝났다.
......
...
자, 다음날 아침.
우리는 피곤해서 늦게 일어나기는 커녕 베트남 시각으로 여섯시 정도에 일어나 버렸다. 뭐 한국 시간으로 따지면 아침 여덟시니 별 것도 아니다.
이러한 베트남과의 시차는 여행 내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베트남은 대부분의 경우 일찍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면서 더 느끼는 거지만 이들은 대략 오전 7-8시에 업무 시작, 오후 5-6시에 끝난다. 그러므로 아침 일곱시에 나가도 대부분의 가게는 열려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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