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으로 남들이 안 하는 일을 저지른다... 는게 있습니다. 물론 대중화되고 상업성이 증명된 분야에서도 많은 제품을 내놓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모험적으로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리고 그냥 하는게 아니라 현 시점에 걸맞는 최신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어 나옵니다. 물론 그게 상업적으로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대량생산-대량판매를 추구하는 현재의 제조업, 그것도 대기업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현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소니가 이번에 또 한번 일(!)을 저질렀습니다. 2016년, 21세기가 된지 17년째인 지금 전축으로도 부르는 턴테이블, PS-HX500을 내놓은 것이죠. 과연 어떤 소니다움이 담겨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레코드판, LP, 전축, 턴테이블
여러분은 혹시 레코드판이나 LP, 혹은 턴테이블이나 전축, 혹은 레코드판에 대해 어떤 추억을 갖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CD나 MP3가 나오기 전에 음악이 주로 담겨나오던 매체가 바로 레코드판 또는 LP였고 이를 재생해주는 기기가 바로 턴테이블 또는 전축으로 불렸습니다. 그 지배력은 엄청나서 턴테이블은 오디오 시스템의 맨 위에 자리잡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CD와 MP3, 스트리밍 오디오로 이어지는 디지털 음원의 득세로 인해 LP와 턴테이블은 어느새 시장에서 도태되었습니다. 대한민국만 해도 지난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마지막으로 운영하던 LP 공장을 닫았죠. 하지만 LP의 운명은 그걸로 끝은 아니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여전히 소량이나마 LP가 발매되고 있었고 2008년 미국에서 레코드 스토어 데이가 개최되어 큰 호응을 얻습니다. 여기에 힘을 입어 한국에서도 2011년 서울 레코드 페어가 열립니다. 이 행사가 성공하면서 올해 6회 째 행사가 열리고 있고 2013년부터는 간간히 국내 아티스트도 조용필 씨를 필두로 간간히 LP를 발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필, 지드래곤, 아이유, 버스커 버스커, 원더걸스까지 제법 유명한 가수들이 한정판 형식으로 LP를 발매하죠. 2012년에는 국내에 LP를 제조하는 공장이 다시 문을 열기도 합니다.
이것이 작은 흐름이 되어 서울 시내에만 20개의 레코드 가게가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LP 레코드를 다시 찾는 것은 왜일까요? 여러가지가 떠오릅니다만, 예전에 썼을 때 느꼈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LP 레코드가 들려주는 아날로그 사운드에 감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디지털 음원보다 LP 레코드가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선택입니다. 물론 디지털 음원이 주지 못하는 실제하는 상품으로서의 LP 또한 의미가 있겠고 말이죠.
자, 그렇다면 이야기를 돌려보겠습니다. 과연 소니는 왜 이 시점에서 턴테이블을 내놓았을까요?
21세기의 턴테이블이란?
21세기에 턴테이블이라니, 소니가 왜... 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소니가 어떤 물건을 내놓았냐를 보면 쉽게 풀릴 듯 합니다.
소니는 요즘 HRA, 고음질 음원 제품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모바일, 개인, 가정용 제품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내고 있죠.
그런데 LP 레코드라는 구세대 미디어를 현 세대의 고음질 오디오 제품군과 연결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소니는 그런 제품군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남은 건 자사 제품과 잘 연결되는 턴테이블인 것이죠.
소니는 자사 제품 PS-HX500의 특징을 두개의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레코드를 최상의 음질로 디지털 데이터화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새로운 캐비넷을 준비했다는 것이죠.
첫번째 항목에서는 21세기에 걸맞는 기능을, 두번째 항목에서는 첫번째 항목을 만족시키지만 결코 오디오의 기본을 잊지 않는다... 는 소니의 의지가 담겨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첫번째 기능에 부응하기 위해 네이티브 DSD AD 컨버터를 내장, 최상의 음질로 변환하게끔 하고 있습니다.
물론 DSD 방식 뿐만 아니라 기존의 LPCM 방식도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합니다. 사실 이 분야는 이미 소니가 익숙한 쪽이긴 하죠.
턴테이블 자체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게 당연합니다. 우선 톤암부터
더스트 커버는 물론이고 MDF 재질의 캐비넷, 편향 절연체를 사용한 부분도 있습니다.
훌륭한 벨트 드라이브 시스템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알루미늄 다이 캐스트 플래터나 5mm로 압축한 HRA 고무 매트 등은 턴테이블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기반이 되었을 겁니다.
바로 그 결과가 이 PS-HX500입니다. 턴테이블로서 다양한 레코드 음반을 재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디지털 기기와 연결하여 소리를 담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고음질로 리핑을 하기 위해서는 턴테이블로서의 기본기 또한 잘 갖춰놨습니다.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다양합니다. 사진에 나온 제품은 UDA-1이라는 소니의 USB DAC 앰프입니다.
뒷면에는 오디오 단자 뿐만 아니라 USB 단자가 있습니다. 다른 턴테이블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말이죠.
Hi-Res Audio Recorder는 윈도우와 맥 모두 지원하며 DSD 방식에서 2.8/5.6MHz와 PCM 방식에서 192kHz까지 그리고 16/24비트 가운데 골라 저장할 수 있습니다. 녹음 프로그램이니만큼 기능은 좀 더 많아지면 좋을 듯 합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디지털로 HRA 음원으로 전송할 수 있다는 점을 빼면 여전히 이 제품은 턴테이블입니다.
본체 위에 올려진 레코드 판에 담긴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죠. 오랜만에 '전축'에서 레코드 판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편안합니다.
PS-HX500은 10월 11일부터 판매를 시작했으며 본체의 출시 가격은 89만 9천원입니다. 해외에서 발표한 가격에 비해 살짝 비싼 감은 있지만 오디오 분야에서 이 정도 가격의 턴테이블은 뭐...
소니 PS-HX500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이제 정리해 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소니의 PS-HX500이 보통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이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분명히 CD나 디지털 음원에 비해 LP 레코드는 여러 모로 불편하며, 관리하기도 힘들기 때문이죠. 1
갖고 있는 LP 레코드를 리핑한다고 해도 전문가가 전문적인 시설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것에 비해서는 여러 모로 아쉬울게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LP 레코드를 갖고 있는데 새로 턴테이블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어떨까 생각해 볼 수 있겠죠.
레코드의 수요가 줄은 것처럼 턴테이블의 수요도 줄었고 제조 업체도 이제 많지 않습니다. 있다 해도 21세기 현 시점의 최신 디지털 음원 기술을 소니만큼 반영한 회사의 제품은 찾기 힘들죠. 기존 오디오 회사의 턴테이블이 과거의 추억에 기반한 제품이라면 소니의 PS-HX500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소니의 적극적이고 패기 넘치는 태도는 고객에게 무시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서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시작했다면 아날로그 사운드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을 소니의 디지털 고음질 음원인 HRA의 세계로 끌고 오기도 좋습니다. 아시겠지만 HRA 쪽은 한번 들어오면 소니 제품만 써야 합니다. 빠져나가기 힘들어요.
... 그래서 21세기가 된지 17년째인 오늘도 LP 레코드는 턴테이블에서 돌고 있습니다. 소니의 턴테이블이 얼마나 많은 레코드를 돌리게 될 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 많은 분들이 지금이야 잊고 살지도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레코드를 꺼내서 먼지 방지 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정성스레 닦아줄 뿐만 아니라 들을 때에는 턴테이블의 핀이 레코드 판 위에 스크래치를 남기지 않을까 늘 신경써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음은 있게 마련이었고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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