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워낙 넓은 나라인지라 돌아다닐 때 이동 시간은 물론이고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럴 때 가난한 배낭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것은 역시 기차다.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시간에 맞춰 다니는 편이기 떄문이다.
기차가 제일 먼저 만들어진 영국에게 식민지 통치를 받은 만큼, 인도의 철도는 나라의 동맥이라고 할 정도로 구석구석 깔려있으며, 그 이용객도 엄청나다. 그만큼 대중적이기도 하고 인도의 빛깔이 잘 드러나기도 하는게 바로 인도의 기차다. 넓은 국토 탓에 침대칸이 발달되어 있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만큼 인도인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인 기차지만 외국인에게는 여러가지 이유로 좀 부담이 되는 존재다. 그렇다고 기차를 피했다가는 비용 절약은 불가능.
1. 자신이 탈 기차편을 알아본다.
우리나라처럼 '어디어디 가는 기차표 주세요~~' 하면 살 수 없는게 인도의 기차표다(예외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모든 기차는 기차 번호를 갖고 있다. 이 Train No.는 참 많은 것이 쉽게 바뀌는 인도에서도 잘 바뀌지 않는 숫자인데, 자신이 가고자 하는 행선지와 시간에 맞는 기차 번호를 알아야 한다.
이 번호는 역의 벽면에 붙어있기도 하지만, Trains at a Glance 라는 책을 사는게 좋다. 가격은 35루피(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것보다 10루피 올랐더라. 젠장)로 역에서 그냥 살 수 있다.
이 책에는 인도 전국의 기차 시간표가 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역과 시간을 맞춰보면 대략 자신이 탈 기차를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 신경써야 할 점은 같은 도시라도 기차역이 여러개 있다(델리만 해도 빠하르간즈 근처에 있는 기차역은 New Delhi Railway Station이다. 다른 역과 혼동하지 말자)는 것과 자신이 있는 도시에 정차를 하는지, 그 시각이 언제인지도 확인을 해야 한다.
2. 등급을 정한다.
< SL 클래스의 정경. 한쪽에 3개의 침대가 배치되어 있고, 통로에도 두개의 침대가 있다. 근데 진우 옆의 저 하얀 수염 아저씨는 우리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아서 끝까지 가더라. -_-; >
배낭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침대차는 SL인데, Second sLeeper의 약자인 듯 하다. 해석하면 대략 2등 침대칸 정도 되려나(2등석 중 다른 종류의 좌석은 여행객들이 이용하기 여러가지 면에서 힘들다).
현지에서는 First Class라 부르는 1등석도 있다. 1등석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에어컨이 나온다는 것. 정말 추울 정도로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
1등석 중에서도 CC라고 표기되는 것이 1등석 좌석이고 이 등급은 특정 기차편(고급)에만 있는게 보통이다.
< 이게 바로 1등석인 CC 클래스. Jhansi에서 Delhi로 향할 때 이용했다. 좋더라.... ^^. 모델은 영민과 진우. >
1등석 침대차 중에는 3A, 2A, 1A가 있다. 침대차는 각각 양쪽에 침대가 층으로 있는 방(Compartment)이 여러개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저 좌석 등급에서 A자 앞에 써있는 숫자가 바로 층으로 쌓인 침대 수다. 3A는 한쪽에 세개의 침대가 층으로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2A는 2개, 1A는 1개로 각 방의 침대수는 양쪽을 합치게 되므로 이 숫자의 두배가 되겠다.
당연히 3A가 제일 싸지만 위 아래 높이가 낮아서 겨우 눕기만 할 정도고 2A면 기대 앉을 정도로 허릴 펼 수는 있다. 하지만 3A 정도만 타도 매우 쾌적한 여행이 되며, 1등석에는 기내식을 준다.
그러나 가격 대비 효율에서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SL을 많이 타는데, SL은 3A와 비슷하면서도 통로 쪽에 침대가 두개 더 있다.
< 아까 그 사진에서 그 부부가 자는 모습. 원래 한사람 자리지만, 표가 없어서 저렇게 가더라. >
3. 기차표를 구입한다.
아그라 탈출 편에서도 강조했지만, 티켓을 구입했다고 안심하지 말고 confirm(보통은 별 표기가 없다) 되어 있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Is this ticket fully confirmed?" 라고 물어서 대답으로 "Yes" 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다.
waiting 상태(W/T 등으로 표기)의 티켓은 자리가 없으니 대기표에 줄 세워놨다...는 의미다.
<자, 기차표에서 TRAIN NO. 2001, 날짜 2006년 4월 18일, 거리 410km, 4명, 클래스인 CC, 출발역인JHANSI JN., 도착역인 NEW DELHI, 열차칸 번호인 COACH, 좌석번호, 기차 이름 SHATABDIEXPRESS, 출발시각(SCHEDULED DEP)을 확인해 보자. >
보통 5일 정도 남아있다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confirm 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하라면 힘들지도 모르며, waiting 상태의 티켓을 구입하고 풀리는 걸 기다릴 수도 있다(보장은 안된다). 짧은 거리라면 waiting 표를 사들고 그냥 서서 갈 수도 있다고 한다(내쫓진 않는다는데... ^^).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면 기차편이 많은 델리 같은 곳이 아닌 한 confirm 된 티켓을 사기 힘들다. 일단 역이 가까워서 알아볼 수 있으면 표가 있는지 알아보고, 표가 없다면 여행사(Tourist Office/Traveller's Office)를 찾는다.
여기서는 약간의 웃돈을 주고 Confirm 된 차표를 살 수 있다. 보통 50루피가 표준 수수료였던 것 같다. 당일에도 급행료를 더 주고 표를 살 수 있다. 요령만 있다면 역에 가서 직접 뇌물을 주고 표를 구할 수도 있다고 한다. 결국 인도는 관리들에게 뇌물이 잘 먹힌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 는 것 같다. -_-
참, 기차역에서 표를 살 때에는 외국인/관광객 전용 예약사무소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가능하다면 그곳을 이용하고, 이 경우 여권과 정부인가환전소에서 환전한 영수증이 있어야 하므로 하나 정도 마련해 놓자.
4. 기차 타기
또 하나의 난관인 기차 타기이다. 인도 기차표에는 플랫폼 번호가 없다. Inquiry 또는 지나가는 역무원을 붙잡고 플랫폼 번호를 물어보자. 불확실한 대답이 나오기도 하니까 두세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 플랫폼에서 기다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면 Waiting Room 같은 곳에서 쉬어도 되고, 역의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기다리면서 내가 탈 기차번호와 이름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도착하는 기차가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출발역이 아닌 한 기차는 조금 늦게 오지만, 혹시 일찍 올 수도 있고 심지어 플랫폼 번호가 바뀌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긴장 풀지 말 것.
기차가 도착하면 기차 번호를 확인하고, 자신이 타기로 했던 객차번호(Coach)로 가보면 입구에 프린터로 찍은 종이가 붙어있는데, 거기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으면 안심하고 올라타라.
자리로 가보면 십중팔구 마치 자기 자리인양 차지하고 있는 현지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단 말로 내쫓아라. 티켓을 보이면서. 만일 말을 안 들으면 차 안에 탑승한 군인들을 부르도록.
5. 기차 여행
1등급인 경우에는 대부분 인도에서도 부자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도난 걱정은 좀 덜 해도(안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되지만, SL을 탈 때에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일단 배낭은 자물쇠를 채워서(커버를 씌우고 그 커버에 자물쇠를 채우는 게 편하다) 옆의 기둥 같은 곳에 별도의 체인으로 연결, 자물쇠로 잠가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장실 갈 때마다 가방을 다 들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기차 뿐만 아니라 버스, 택시 등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권하는 음료는 좋은 표정으로 사양하는게 좋다. 심지어 자릴 비운 사이에 두고 왔던 물통에도 약을 타 놨을 수 있다.
한마디로 모두를 의심해야 하는 참 안 좋은 상황이다.
기차 여행 중 식사는 1등석의 경우에는 기본으로 제공되고, 2등석은 별도로 사먹어야 하지만 종류는 탈리 한 종류고, 그 외에도 생수나 짜이를 포함한 몇가지 간식거리를 팔고 다니기도 한다. 알아서 준비해 주는게 좋다는 이야기.
< SHATABDIEXPRESS의 기내식. 먹을 만 하더라. >
6. 도착
앞에서도 여러번 말했지만, 긴장은 인도의 기차여행에서의 필수 품목이다.
인도의 기차에는 차내 방송이란게 없다.
즉, 기차가 도착하기 전 다음 역에 언제 도착합니다~ 라는 말도, 도착해서 이 역은 어느 곳이니 내리실 분 짐 챙겨서 내려주세요~ 라는 말도 없다.
그냥 정차하고, 시간되면 출발한다.
결국 Train at a glance 책자를 보거나,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도착시각을 알아내고 그 전 30분 정도부터 기차가 설 때마다 창 밖을 보고 기차역명을 확인하거나 사람들한테 여기가 맞냐고 물어봐야 한다.
내리기 좀 전부터 짐을 자물쇠에서 풀고, 내릴 준비를 맞춰 놓는 건 필수. 물론 역에 따라 30분 이상 쉬는 곳도 있긴 하다. 그런 곳에서는 여유있게 내려도 좋다.
자, 길고 긴 기차 여행이 끝났다. 하지만 몇마디만 더.
7. 덧붙여서
- 기차여행 중에 문제가 생기면 차내 경찰 역할을 하고 있는 군인들을 찾아라. 그들은 그래도 믿을만 하더라.
-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거나 고성방가를 하면 벌금과 함께 내쫓길 수도 있으니 하지 말아라(적어도 들키지는 말아라).
- 인도의 기차가 연착이 잘 되지만, 그래도 다른 교통편에 비해서는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라는 것을 생각해라.
- 몸 상태가 안 좋다 싶으면 돈을 더 지불하고 1등석을 타라. 그게 낫더라. 특히 라자스탄 같은 사막 지방을 다닐 때는 1등석을 타는게 좋다. 모래바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
- 이렇게 인도의 기차에 대한 걱정스러운 소리들을 많이 했지만, 사실 인도의 현지인들과 부담없이 이야기하기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가 기차 안이다. 너무 두려워 말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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