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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작은모바일/#스마트폰#PDA#PMP

PDA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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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는 가볍고 터치스크린에 언제든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휴대에 정말 적합한 디지털 기기로 태어났습니다. 보통 애플사의 뉴튼 시리즈를 최초로 보고 있는 PDA 제품군은 1996년 팜 파일럿 시리즈의 등장과 함께 활짝 꽃을 피웁니다.

 

PDA의 개념을 처음 확립 애플사의 뉴턴 메시지패드 MP-100 (출처 : 위키백과 Staecker)

 

하지만 세월이 흘러 기세등등하던 PDA 시장은 어느덧 침체기에 접어듭니다. PDA를 생산하던 많은 업체들은 사업 방향을 돌리거나 생산을 중단하기도 하고 심지어 회사의 문을 닫기까지 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한때 디지털 휴대기기의 총아로서 각광받던 PDA에게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걸까요?

 

PDA의 성장

팜 시리즈로 대변되는 초기 PDA 제품군들이 성장하는 데는 이들이 갖고 있던 완성도 높은 PIMS(Personal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 개인정보관리시스템)에 기인한 바가 큽니다. 쉽게 말하면 일정관리나 연락처 관리 등을 잘 통합한 작지만 강력한 전자수첩을 갖고 다니는 셈이 된 거죠.

 

수첩은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작건 크건 하나씩은 갖고 다니는 물품이고, 팜 제품들은 그리 크지 않아 휴대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팜 파일럿 시리즈의 등장 이후로 PDA 시장은 갈수록 커져만 갔죠.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 참여는 PDA 시장을 확대하는데 상당히 공헌합니다.

PDA의 대중화로 가는 길을 활짝 열었던 팜 파일럿 (출처:위키백과 Paranoid)

이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CE를 기반으로 한 제품군을 들고 나옵니다. 이들의 컨셉은 PC와 닮게 보이기 였습니다. PC용 OS와 애플리케이션에 강점을 가진 업체였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다만 이렇게 하는 경우 팜 진영 제품보다 전반적으로 하드웨어에 부담을 많이 줘서 속도는 느리고 배터리 소모량이 많다는 문제가 있었죠.

 

몇 번의 시행 착오 후에 UI를 뜯어고쳐 PC가 아닌 PDA에 최적화한 다음 화면을 모두 컬러로 하고 멀티미디어 지원을 추가한 포켓PC(PocketPC) 플랫폼 등장부터 이 전략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던 팜 플랫폼 보다는 ‘시작’ 단추가 들어간 컬러 화면과 함께 화려한 멀티미디어를 지원하는 기능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컴팩의 아이팩(iPaq)을 필두로 하는 포켓PC(현재는 윈도 모바일로 바뀜) 제품군은 이 화려함을 내세워 PDA 시장에 자리잡습니다.

팜 제품군은 말 그대로 편리한 전자수첩에 치중한 제품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화려함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이들에 대항하는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팜 OS는 이러한 기능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덕분에 간단함이 곧 장점이었던 팜 OS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PDA를 대체하는 존재의 등장

사람들은 어떤 기기를 쓸 때 명확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늘 가지고 다녀야 하는 휴대기기라면 훨씬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운동선수가 아니라면 억지로 무겁게 다닐 이유가 없으므로 최대한 가볍게 다니기 위해서 자신의 목적에 맞지 않는 것들은 모두 놔두고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MP3 플레이어를 따로 들고 다니다가 휴대폰에 MP3 연주 기능이 내장된 제품이 나오면서 휴대폰만 들고 다니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비단 전자제품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제품이라도 가지고 다녀야 한다면 마찬가지가 됩니다. 두겹을 입어야 따뜻했던 옷이 한겹만 해도 따뜻한 옷이 나온다면 예전 옷을 집에 놔두고 새 옷을 사서 입고 다니는 것도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팜이건 마이크로소프트건 이 부분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정한 PDA의 정의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기능을 추가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존 PDA 시장에서의 실적이 제법 훌륭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로 뭘 원하는지 보다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만들었던 PDA에 기초를 둔 상태에서 기능 추가만 하고 싶어 했습니다. PDA가 보여준 다양한 가능성을 소비자에게 맞게 특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겁니다.
새로운 휴대기기들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 듭니다.

PDA에게 제일 먼저 칼을 들이댄 건 휴대폰입니다. 휴대폰은 등장하자마자 전자기기 중 제 1순위 휴대전자기기로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휴대성과 전화 기능에만 집중하던 1세대 제품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MP3/동영상 플레이, 전자책 보기, 게임, 네비게이션 등 PDA 못지 않은 다양한 기능으로 중무장한 제품들이 PDA보다 월등한 휴대성을 갖고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PDA의 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PIMS를 갖추고 PC의 대표적인 PIMS 프로그램인 아웃룩과 싱크 가능한 제품까지도 나왔습니다. 휴대폰의 판매량은 PDA를 앞선지 오래 되었으며 그 차이는 앞으로도 더욱 벌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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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능으로 중무장했지만 너무나 가볍고 작은, 현재 최강의 휴대기기인 휴대폰 (출처 : 보도자료)

 

휴대폰에 이어 PDA 시장을 강타한 것은 MP3 플레이어입니다. 이미 휴대폰에 MP3 플레이어 기능이 있어도 음질을 강화한 MP3 플레이어를 따로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MP3 플레이어 또한 경량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전자책 보기나 간이 동영상 플레이 기능 또한 내장합니다. PDA에 MP3 연주 기능이 있다 해도 별도의 MP3 플레이어를 사서 갖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PDA는 또 한번 휴대 순위에서 밀립니다.


우리나라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PMP의 등장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PMP는 PDA 못지 않은 우수한 프로세서와 그래픽 가속기능으로 중무장하여 본연의 기능이라 할 수 있는 각종 멀티미디어 데이터의 우수한 재생능력은 물론, PDA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설치/활용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춥니다. 재미있는 것은 PMP의 많은 부분이 기존의 PDA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용하는 OS도 대부분 Windows CE 기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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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능을 자랑하는 PMP (출처 : 보도자료)

 

이들 제품들은 PDA 시장이 침체되면서 그 부분의 시장을 그대로 차지하거나 더 나아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제품군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제품의 명확한 존재 이유와 함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쉽다는 점입니다. 이들 제품들은 PDA와는 다르게 사용에 익숙해지는데 오래 걸리지 않으며 불필요한 기능은 사용자가 손댈 필요가 없게 최대한 배제되어 있습니다.

 

PC와의 데이터 싱크에서 발생하는 에러에만 몇날을 고생하는 사람들이 흔한 PDA 쪽과는 틀립니다. 그리고 PDA가 가진 대부분의 기능은 이미 휴대폰이나 MP3 플레이어, PMP 쪽에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생각하면 그 부분에서만큼은 대부분 PDA보다 우수하죠.

거기다가 또 한가지의, 정말 거대한 압박이 있습니다. 그것은 PC의 소형화입니다. 노트북 등 휴대용 PC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이 현상은 근래에 들어와 변화의 속도에 박차를 가합니다. 1kg 미만의 노트북 PC가 나온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뒤이어 UMPC 등 새로운 제품들이 등장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 제품군의 컨셉이었던 PC와 닮게 보이기는 여기서 무너집니다. 닮게 보일 필요없이 PC는 아무리 작아도 그 자체로 윈도XP를 돌릴 수 있는 PC입니다. PC와 PDA를 순수하게 기능 면에서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겠죠.

 

거기에 더하여 휴대기기 이용자의 숙원이었던 PC에서 보는 웹 화면 그대로 휴대기기에서 보기도 기본으로 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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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아도 PC, 라온디지털의 베가

 

정리하면, PDA는 그저 당시의 기술적인 사람에게 사람들에게 잘 맞았던 디지털 휴대기기였을 뿐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플랫폼은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성공에 기대어 변화를 게을리한 결과가 지금의 PDA 시장 모습입니다.

 

결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PDA 업체들은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휴대폰의 보급율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MP3 플레이어 아이팟이 기울어가는 애플 컴퓨터를 몇년 사이에 우량기업으로 만드는 동안 PDA를 생산하던 소니나 샤프, 델처럼 사업을 중단하거나 셀빅처럼 문을 닫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심지어 PDA 시장을 이끌어오다시피 한 팜 OS의 차기 버전 개발이 실질적으로 중단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PDA 업계가 그냥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팜은 정통 PDA가 아닌 스마트폰 계열인 트레오를 시장에 내보내 성공시킵니다. LG전자는 아이팩을 생산하던 경험으로 PDA 본연의 기능보다는 DMB, GPS를 내장한 네비게이션 등에 최적화한 PM80과 N1 등을 발표합니다. PDA 시장의 한쪽 축을 담당하던 HP의 아이팩 시리즈 또한 뒤늦고 모자라긴 하지만 모바일 미디어 컴패니언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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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의 DMB/네비게이션 전용 PDA N1 (출처 : 보도자료)

 

이들의 공통점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목적의 명확성입니다. 기존에 PDA가 가지고 있었던 정체성에 머물지 않고 PDA가 원래부터 갖고 있는 풍부한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새로운 소비자들을 위해 명확한 몇가지 목적에 최적화하여 사용하기 쉽게 포장했다는 점이죠. 이들 중에서 트레오는 이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고 다른 제품들도 일부는 나름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소비자에게 인식되는 모습입니다. 트레오는 PDA라기 보다는 휴대폰의 발전형인 스마트폰으로, LG전자의 N1 또한 DMB/네비게이션 기기로 소비자는 인식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따로 예는 안 들겠지만,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자동차 네비게이션 시스템도 초기에는 대부분 PDA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에 PDA의 미래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PDA 시장은 계속 줄어들고 결국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뒤에 나온 수많은 후대의 휴대기기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없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물리적인 개체로서의 PDA는 사라질 지 몰라도 PDA가 보여준 사람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디지털 비서라는 개념 자체는 앞으로도 앞으로도 수많은 디지털 휴대기기들에게 남아 전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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